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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의 추억

1.
바야흐로 2014년, 지구 종말이 온다던 해로부터 14년이나 지난 지금, 지구 종말은 오지 않았다. 하지만 평생 열심히 공부하고 일을 해도, 결코 자신의 집 한 채를 소유할 수 없는 지금 이 시대야말로 생존 경쟁으로 치열한 폐허라 할 수 있겠다. 폐허의 시대에 선 젊은 세대들은 더 이상 ‘내 집 마련’이라는 꿈을 꿀 만큼 순진하지는 않다. 그러므로 ‘지상의 방 한칸’이라도 마음껏 향유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이 역시 녹녹치 않은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이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소유’가 아닌 ‘임대’이다. 임대는 현재- 월셋방, 고시원, 모텔방 등으로, 나아가 카페 안의 테이블로까지 잘게 쪼개지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오직 ‘임대’ 뿐 이라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했다. 그리고 이러한 고민에서 본 전시는 기획되었다.

2.
본 전시는 경복궁역 근처에 위치한 게스트 하우스에서 이루어진다. 게스트 하우스는 많은 사람들이 잠시 머물다 떠나는 특성을 지니는데, 이는 필요한 대상을 잠시 빌려 쓰고 돌려 주어야 하는 우리 삶의 방식과 많이 닮아있다. 참여 작가들은 이렇게 한정적이고도 상징적인 공간인 게스트 하우스에 이박 삼일간 적극 침투하여- 자신들이 ‘임대’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 나아가 한정적인 시공간을 점유하고 향유하는 방식을 다양하게 선보이고자 한다.

김수환은 “마음이 없다면, 그래서 아무도 원하지 않고 바라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순수한 본능으로 주어진 일생을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질문을 던지며 작업을 시작한다. 그리고 ‘김박사’라는 인물이 인간의 마음을 지우는 기계인 <이름없는 기계>를 만들게 되는 에피소드를 육성으로 들려준다. 방 안에서 울려퍼지는 이 목소리는- 임대라는 것이 소유라는 욕망의 결핍 상태라고 상정했을 때, 그 욕망 너머에 존재하는 인간의 순수한 본능, 생의 의지를 들여다 볼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 준다.
김수환이 이렇게 완벽한 허구로 이야기를 풀어낸다면, 류은지는 허구인지 사실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이야기로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전시가 이루어지는 게스트 하우스 에서 출발하는 작가의 작품은, 그 장소에서 일어난 사건을 토대로 그려진 회화 작품과 사운드 설치로 구성된다. 그리고 이것들을 일련의 단서로서 불특정 다수의 관객들, 전시가 진행되는 기간 동안 게스트 하우스에 머무는 특정 숙박객들에게 제공한다. 이를 통해 과거에 특정 장소에 머물렀던 사람과 현재 그 장소에 머무는 사람, 그리고 가까운 미래에 그 장소에 머물게 될 사람이 한 장의 그림에서 만나게 되는데, 이는 한 장소에 축적된 역사성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나아가 과거의 사건이 현재와 미래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 지도 함께 살펴본다.

한편- 전시가 이루어지는 이박 삼일이라는 짧은 임대 기간동안, 작가 스스로가 이른바 임대인이 되어 불특정 다수의 관객들에게 새로운 틀을 제시하고자한 작가들도 있다. 김허앵은 전시 기간동안 게스트 하우스의 한 객실을 2시간 짜리 ‘낮잠방’으로 운영한다. 이는 전시의 한 구성으로 시간과 방을 ‘빌린’ 작가가 낮잠방에 머무는 관객에게 2시간이라는 쪼개진 시간동안 방을 ‘빌려주는’ 사람으로 변환되는 작업으로, 임대와 임차의 전유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낮잠방에는 연필 드로잉 80장으로 만든 슬라이드 필름이 오래된 텔레비젼 환등기에서 영사된다. 이 드로잉에는 바쁘지만 아둔하거나, 무력하지만 심술궂은 개인들이 우스꽝스러운 서사 속의 캐릭터로 등장하는데- 작가는 이러한 캐릭터와 서사를 통해, 삶을 살아가면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오류와 손실에 대해 이야기 한다.
이미정은 젊은 세대들이 시간 단위로 자신의 생계를 해결해 나가는 것을 배경으로, 시간 단위로 간단한 운동과 놀이를 할 수 있는 기구들을 선보인다. 이 기구들은 전시 장소인 게스트 하우스 가옥 구조에 맞춰 제작·설치 되어, 흡사 헬스 클럽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이는 바쁘게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이 바쁜 시간을 쪼개 방문한 전시장에서 가져갈 수 있는 것– 작가가 관객에게 제공할 수 있는 것으로- 작은 단위의 열량 소모와 유희를 제시하기 위함이다. 여기서 작가가 꺼내든 ‘유희’라는 카드는, 임대라는 상태 혹은 조건 속에서도 개인의 존재성과 즐거움을 포기하지는 말자는 일련의 선언으로 작동한다.

자신이 딛고 있는 땅- 그 위에 견고히 짜여진 시스템으로부터 작업을 시작하는 차지량은 ‘소유와 임대’라는 단어 뒤에 가려져 있는 사회, 정치, 문화적 관계등을 인식한다. 그리고 우리가 현재 ‘소유’와 ‘임대’를 취하는 방식이 이 시대의 룰을 비판적 사고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건 아닌 지 반문한다. 그리고 이러한 반문의 답을 ‘임대 조건을 변형한 현장’에서 각자의 ‘임대의 추억’을 이야기 해보는 현장 발화를 통해 찾아 보고자한다. 또한 도시계획에 관여하지 않은 특정 세대가 2011년- 12년 동안 새로 완공된 다세대 주택, 원룸, 신도시 아파트에 일시적 거주를 진행한 기록 영상인 <뉴홈>을 게스트 하우스에 모인 사람들과 함께 보며 또 다른 상상적 제안을 모색한다.

3.
게스트 하우스에서 이박 삼일 동안 압축적으로 진행되는 본 전시는, 삶의 조건이자 방식으로 자리잡은 ‘임대’를 어떻게 바라보고 다룰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 한다.
전시가 이루어지는 이박 삼일이라는 시간은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하지만 그 특정 시공간에서 함께 할 불특정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임대란 정녕 소유하기를 좌절당한 세대들의 마지막 선택지인지, 그렇다면 대상을 온전히 갖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나아가 현재의 조건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다룰 것인지 등- 임대와 소유를 둘러싼 여러가지 담론들을 함께 나눠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해보는 바이다.

■이미정